룻기 1장 1절-14절, 인생의 흉년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 - 생명의 삶 큐티

룻기 1장 1절-14절, 인생의 흉년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 - 생명의 삶 큐티



서론: 인생의 흉년, 어디로 갈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베들레헴’이라는 지명, 그 속에 담긴 아름다운 뜻을 알고 계십니까? 바로 ‘떡집’입니다. 떡집이라면 마땅히 풍성한 곡식이 있고, 갓 구운 빵의 따뜻한 향기가 가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은 참으로 믿기 힘든 역설로 시작됩니다. 풍요의 상징인 떡집에 그만 떡이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흐르는 그 땅에 메마른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종종 이런 당혹스러운 현실을 마주하곤 합니다. ‘예수님 잘 믿고 순종하면 당연히 형통하겠지’라고 기대하며 나아갑니다. 하지만 때로는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 가정에도 예기치 못한 ‘경제적 위기’라는 흉년이 닥칩니다. 간절히 기도해도 ‘질병의 흉년’이 찾아오고,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이들과의 ‘관계’에 가뭄이 들기도 합니다.

떡이 있어야 할 베들레헴이 텅 비어버릴 때,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심각한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오늘 설교의 시작을 여는 키워드는 바로 ‘이사’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직장이나 자녀의 학군, 혹은 더 좋은 환경을 위해 이사를 결정하곤 합니다. 참 합리적인 선택이지요.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엘리멜렉 가족의 이사는 조금 달랐습니다.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 땅 모압으로 향한 그 걸음은, 단순히 주거지를 옮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의 결핍을 견디지 못해 하나님이 정해주신 ‘약속의 자리’를 떠나버린 영적 도피였습니다. 눈앞의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약속의 도성을 등지고 이방의 풍요를 선택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흉년이라는 딜레마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손익을 따지며 계산만 하고 있으시겠습니까? 오늘 이 엄중한 질문 앞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첫째, 눈에 보이는 풍요를 쫓는 이방행

가정의 가장이었던 엘리멜렉, 그의 이름에는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위대한 신앙의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삶의 실제적인 위기가 닥치자 그는 이름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그분의 땅에서 인내하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왕으로 삼아 풍요로워 보이는 모압 평지로 미련 없이 떠나버린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굶주림을 피해 찾아간 모압은 당장에는 생명을 연장해 줄 따뜻한 도피처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참으로 가슴 아프고 참담했습니다.

‘하나님은 왕이시다’라고 고백하던 남편 엘리멜렉이 먼저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어서 두 아들마저 이방 땅에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두 아들의 이름인 ‘말론(병약)’과 ‘기룐(황폐)’은 그들이 약속을 떠나 머물렀던 10년의 세월이 얼마나 영적, 육적으로 말라갔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의 풍요를 쫓아간 인생의 종착역은 결국 ‘텅 비어버림’이었습니다. 나오미의 품에는 남편도, 자식도, 소망도 남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제시하는 달콤한 방법은 잠시 우리의 목을 축여줄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국 철저한 고갈과 상실의 고통 앞에 서게 될 뿐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들려오는 은혜의 소식, “하나님이 돌보셨다”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낯선 모압 땅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우리 함께 6절 말씀을 주목해 볼까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것이 바로 우리를 살리는 복음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방황하며 실패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조차,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돌보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켜보는 것을 넘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목적을 가지고 직접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방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베들레헴에 다시 떡을 주셨다는 소식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떠난 나오미에게는 뼈아픈 후회인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은혜의 초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방문하시면 아무리 깊은 흉년이라도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 복된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비로소 ‘슈브’, 즉 회개의 발걸음을 뗍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복은 그 소식을 믿고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설 때’ 완성되는 줄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머무는 자리가 혹시 모압은 아닙니까? 주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이 복된 소식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셋째, 선택의 기로에서 붙잡는 ‘헤세드’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하며, 두 며느리에게는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합니다. 현실적인 계산으로는 시어머니를 따라가 봐야 아무런 소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오르바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국 자신의 민족과 신들에게로 돌아가는 ‘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룻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성경은 룻이 나오미를 ‘붙쫓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붙쫓다’라는 말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룰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단순히 곁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걸고 연합했다는 뜻입니다.

룻은 그저 시어머니가 가여워서 따라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나오미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신앙적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룻이 보여준 이 조건 없는 사랑과 충성은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인 ‘헤세드’의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룻의 선택은 가장 미련하고 손해 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이방 여인의 ‘헤세드’를 통해 끊어질 뻔한 메시아의 가문을 이어가시는 위대한 드라마를 써 내려가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보잘것없는 작은 순종이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사와 맞물릴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시작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결론: 텅 빈 우리를 채우실 그리스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오미는 모든 것을 상실하고 텅 빈 몸으로 베들레헴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그녀는 결코 홀로 버려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위로자 룻이 곁에 있었고, 무너진 가문을 다시 세울 보아스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결코 방치하지 않으신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무엇보다 이 초라한 족보의 끝에는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분, ‘참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영적 결핍을 영원히 채워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인 줄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영적인 흉년 속에 주리고 계십니까? 세상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자리, 은혜의 보좌 앞으로 속히 돌아오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텅 빈 채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풍성함으로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오늘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해 소망의 한 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복된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주님, 인생의 흉년 앞에 두려워 떨며 세상을 향해 눈을 돌렸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오미처럼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순간에도 주님의 돌보시는 소식을 듣게 하시고, 룻과 같이 주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의 텅 빈 공간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헤세드로 가득 채워지는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흉년과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내 삶을 지켜 나가게 하소서.
  • 어려운 때에도 주께서 돌보심을 믿고 인내하게 하소서.
  • 룻의 헤세드 신앙을 본받아 오늘도 자비와 은혜를 베풀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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