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6편 1절-12절, 영적 건망증을 이기는 이름 - 생명의 삶 큐티

시편 106편 1절-12절, 영적 건망증을 이기는 이름 - 생명의 삶 큐티



서론: 우리는 왜 이토록 쉽게 잊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차가운 공기를 뚫고 주님의 전으로 참 잘 오셨습니다. 각자 무거운 기도의 제목을 안고 이 자리에 앉으셨을 텐데, 밤새 우리를 잠 못 들게 했던 그 삶의 무게가 지금도 여러분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요한 성전에 앉아 눈을 감지만, 혹시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날 선 의심이 들지는 않으신지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셔서, 지금 내 이 처참하고 막막한 상황을 보고 계실까?'

우리 신앙인들은 흔히 이런 씁쓸한 고백을 합니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의 고난을 이기지 못한다." 어제 예배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감사가 넘치고 찬양이 가슴을 채웠는데, 오늘 아침 눈을 뜨는 순간 그 영적인 감격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당장 마주해야 할 끝없는 업무와 직장에서의 갈등, 대화가 끊긴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통장 잔고를 보며 느끼는 경제적 압박이 성난 파도처럼 우리를 삼키려 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거대한 역사보다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더 크게 여기는 것, 과거에 베푸신 기적의 기억을 현실의 공포로 덮어버리는 것—이것이 바로 우리의 아픈 실상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이를 가리켜 우리의 '영적 건망증'이라고 통렬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본론


첫째, 우리의 본성: 은혜를 너무나 쉽게 망각하는 존재입니다.

시인은 오늘 우리를 향해 아주 정직하고도 충격적인 고백을 던집니다.

  • "우리가 우리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함을 행하였나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애굽 땅에서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죽음의 재앙이 문설주를 넘어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서 바로의 전차 소리가 들려오자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의 영혼은 마치 모든 기억이 지워진 것처럼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은 그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인자하심을 기억하지 아니했다"고 기록합니다.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망각'은 단순히 머리가 나빠서 잊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내 앞의 위기를 더 신뢰하기로 한' 우리의 의지적인 선택이자 불신앙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환경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매일 은혜를 잊고 방황할 때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언덕에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향한 약속을 '기억'하셨습니다. 오늘 새벽, 여러분의 문제가 태산처럼 커 보입니까? 그것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문제입니다. 과거에 여러분을 건지셨던 그 손길을 다시 떠올리시길 바랍니다. 기억이 회복될 때 믿음도 회복될 줄 믿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열심: 오직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 잊어버리는데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8절의 위대한 반전 때문입니다.

  •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는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홍해 앞에서 갑자기 믿음이 좋아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움직이셨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당신 자신의 '거룩한 명예'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존재의 성품과 명예를 뜻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홍해에서 죽게 내버려 두셨다면, 세상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 자기 백성을 죽였다"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는 분'이라는 말을 결코 용납하실 수 없으셨기에, 우리의 실패보다 더 큰 하나님의 열심으로 바다를 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가장 존귀한 이름, '예수'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이 이름이 우리 이마에 새겨져 있기에, 하나님은 당신 아들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책임지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무능함 때문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여러분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셋째, 구원의 결과: 믿음과 찬양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구원이 임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바다가 원수들을 덮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에서 건지시는 목적은 단순히 우리가 편안하게 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억눌렸던 가슴에서 다시 찬양이 터져 나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굽어 있던 신앙의 무릎이 다시 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찬양은 구원받은 영혼이 내뱉는 가장 건강한 호흡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십니다. 그래서 비록 현실의 바다는 여전히 출렁거릴지라도, 우리 영혼이 보이지 않는 승리를 미리 찬양하게 하십니다.

홍해가 다 갈라진 후에 찬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성도는 갈라질 것을 믿고, 아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고난의 한복판에서 먼저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기도가 탄식에서 찬양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변치 않는 '헤세드'를 붙드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즉 '헤세드'는 우리의 행위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수돗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린 그 비참한 순간에도 결코 멈추지 않고 솟아나는 신실한 샘물입니다.

우리의 열심은 식을 수 있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단 한 번도 식은 적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삶이 앞뒤가 꽉 막힌 홍해처럼 느껴지십니까? 은혜를 잊었던 우리의 연약함을 먼저 회개하며,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다시 의지합시다.

성령님께서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의 무뎌진 영적 기억력을 새롭게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의 거센 파도보다 더 크고 장엄하게 서 계신 주님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 복음의 기억이 오늘 여러분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홍해 앞에서 과거의 은혜를 잊고 원망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저의 자격이 아닌 주님의 이름과 거룩한 명예를 위하여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확정된 그 인자하심을 믿으며, 오늘 마주할 파도 앞에서도 미리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영적 건망증을 치료해 주시고 은혜를 기억하게 하소서.
  • 나의 공로가 아닌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게 하소서.
  • 어떤 상황에도 찬양이 끊이지 않는 하루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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