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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3편 12절-22절, 먼지 같은 인생, 영원한 사랑을 입다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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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무엇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성도 여러분, 평안하셨습니까? 혹시 집안 '대청소'를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무리 정성껏 쓸고 닦아도, 뒤돌아서면 어느새 소리 없이 내려앉는 것이 바로 '먼지'입니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 인생의 실존을 가리켜 바로 그 '먼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 먼지 같은 연약함을 감추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화려한 명품으로 치장도 해보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커리어를 쌓으며 "나는 먼지가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러분, 정직하게 한번 돌아보십시오. 오늘 퇴근길 빽빽한 지하철 안에서 우리가 느꼈던 그 형언할 수 없는 피로,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마음 한구석의 공허함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가 결국 붙들 곳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대면하게 하지 않습니까? 이런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은 우리가 쌓아 올린 대단한 업적을 보고 부르신 게 아닙니다. 우리의 '먼지 됨' 그 자체를 이미 아시고, 그 무거운 짐을 대신 지러 오신 줄 믿습니다. 세상은 먼지를 무시하고 털어버리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먼지를 긍휼히 여기셔서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보잘것없는 먼지 같은 우리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얼마나 존귀한 가치를 입게 되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첫째, 우리의 죄를 멀리 옮기시고 연약함을 품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시인은 사죄의 은총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멀리 옮기셨으며." 사랑하는 여러분, 동과 서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되십니까? 북극과 남극은 언젠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지만, 동과 서는 영원히 평행하여 결코 만날 수 없는 거리입...

시편 99편 1절-9절, 거룩하신 왕의 보좌 앞에서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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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새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서론: 새벽, 우리 영혼이 진짜 왕을 만나는 시간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주님의 전으로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새벽은 참 묘한 시간입니다. 세상은 아직 고요하지만, 우리 마음속은 벌써부터 오늘 처리해야 할 일들, 어제 다 끝내지 못한 걱정들로 소란스럽기 마련입니다. 마치 성난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우리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불안해하며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99편 1절은 바로 그런 우리를 향해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러분, 여기서 '떤다'는 것은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압도적인 위엄과 거룩함 앞에 서게 될 때, 피조물이 느끼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거룩한 경외심입니다. 본론 우리가 삶에서 불안을 느끼는 진짜 이유는 문제가 커서가 아닙니다. 그 문제보다 훨씬 크신 ' 하나님의 다스림 '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다고 착각할 때 우리는 지치고 무너집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지금도 보좌 위에 앉아 계신다고 말합니다. 오늘 이 새벽,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 주권의 전환 ’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본론 1: 거룩하신 왕은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이 "지극히 거룩하시다"고 반복해서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거룩함이 우리 삶에 어떻게 나타납니까?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평을 견고하게 세우시고...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보좌는 '그룹(천사) 사이에 좌정하신 곳'이었습니다. 이는 성막의 언약궤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당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