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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2편 1절-16절, 재 위에 앉아 영원을 바라보다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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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서론: 연기처럼 흩어지는 일상 속에서 성도 여러분, 유난히 몸이 무거운 새벽입니다. 어제저녁 뉴스를 보며 한숨지으셨나요, 아니면 밤늦게까지 이어진 '자녀 걱정'이나 '치솟는 물가' 때문에 뒤척이다 나오셨나요? 우리는 매일 성실하게 살아가려 애쓰지만, 문득 "내가 지금 무얼 위해 이렇게 뛰고 있나" 하는 허무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쌓아 올린 공든 탑이 '건강 이상' 소식 하나에, 혹은 '관계의 어긋남' 한 번에 연기처럼 흩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도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그는 지금 인생의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정면으로 맞았습니다. 3절을 보니 그의 날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뼈는 숯처럼 타버렸다고 합니다. 마음은 풀처럼 시들어버려 밥 먹는 것조차 잊었다고 고백합니다(4절). 이 처절한 외로움과 고통은 비단 시인만의 것이 아닙니다. 본론: 고난의 탄식에서 영원의 찬양으로 오늘 이 새벽, 기도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 광야의 올빼미 '처럼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바로 그 절망의 밑바닥이 하나님의 영원을 경험하는 시작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대지 1: 나의 유한함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쏟아 놓으십시오.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 같다고 말합니다. 시편 102:7,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시인은 누군가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고립감, 원수들의 비방,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 분노"로 인해 던져진 것 같은 영적 침체를 가감 없이 쏟아냅니다. 사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좋으면 고난 중에도 늘 웃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

시편 90편 1절-17절, 영원하신 하나님과 덧없는 인생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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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애굽의 왕 바로 앞에 선 백발의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족장으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야곱이었지만,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삶이 그저 짧고 험악한 나그네 길에 불과함을 철저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이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안개와도 같습니다. 오늘 새벽예배를 통해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시편 90편 설교 본문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모세가 지은 시입니다. 광야 40년의 유랑 생활 속에서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모세는,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는 덧없는 인간의 존재를 대비하며 장엄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배경과 본문의 내용 시편 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표제를 가진 유일한 시편이자 깊은 지혜의 시입니다. 출애굽 이후 척박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며 수많은 백성들이 스러져가는 것을 바라보며, 모세는 인간의 유한성과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뼈저리게 묵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세는 절망에 머물지 않고,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만을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요 거처로 삼을 것을 간절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1 :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첫째, 시편 90편 1절에서 모세는 "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거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 '마온(מָעוֹן)'은 단순한 물리적 집을 넘어서, 적의 맹렬한 공격이나 환난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 '피난처'와 완전한 '안식처'를 의미합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가 조성되기 전부터 영원토록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만이 유한한 인간의 유일하고 참된 안식처...